高麗,本曰高句驪.禹別九州,屬冀州之地,周為箕子之國,漢之玄菟郡也.在遼東,蓋扶餘之別種,以平壤城為國邑.漢、魏以來,常通職貢,亦屢為邊寇.
서언: 고려는 본래 고구려로 불린다. 우(禹)임금이 (천하를) 9주로 나눌때 기주(冀州)땅에 속하게 하고, 주(周)나라 때에는 기자(箕子)의 나라가 되었으니, 한(漢)나라의 현도군(玄菟郡)이다.(고구려는) 요동(遼東)에 있었는데, 부여 별종으로 평양성에 도읍을 두었다.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 항상 조공 하면서도 변방을 침범하였다.
隋煬帝再舉兵,唐太宗親駕伐之,皆不克.高宗命李勣征之,遂拔其城,分其地為郡縣.唐末,中原多事,遂自立君長.後唐同光、天成中,其主高氏累奉職貢.長興中,權知國事王建承高氏之位,遣使朝貢,以建為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封高麗國王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두번 출병하였고, 당(唐)나라 태종(太宗)도 친히 (고구려를) 쳤지만 모두 이기지 못하였다. 그후 (당(唐)나라)고종(高宗)은 이적(李勣)에게 (고구려를) 칠것을 명해 마침내 그 성들을 쳐서 빼았고 그 땅을 나누어서 군(郡)과 현(縣)에 속하게 하였다. 당(唐)나라 말에 중원에 많은 변고가 있어서 (고려가) 드디어 스스로 군장을 세웠다. 후당(侯唐) 동광(同光923~925년),천성(天成926~929년) 중에 그 주인 고씨가 자주 공물을 바치었다. 장흥(長興930~933년, 고려 태조 13~16년) 중에 권지국사(權知國事) 왕건(王建)이 고씨의 자리 이어 (후당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니, 건을 현도주도독으로 삼고, 대의군사(大義軍使)로 두고 고려국왕(高麗國王)에 봉(封)했다. 晉天福中,復來朝貢.開運二年,建死,子武襲位.漢乾祐末,武死,子昭權知國事.周廣順元年,遣使朝貢,以昭為特進、檢校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大義軍使、高麗國王.顯德二年,又遣使來貢,加開府儀同三 司、檢校太尉,又加太師. (후後)진(晉) 천복(天福930~933, 고려 태조 19~26년) 중에 다시 조공하였다. 개운 2년에 (945년, 고려 혜종 2년)에 건(建)이 죽고 아들 무(武)가 자리를 이었다. (後)한(漢, 광무제 의 후한이 아님) 건우 말에 무(武)가 죽고 소(昭)가 권지국사가 되었다. (後)주(周) 광순 원년(951)에 사신을 보내와서 조공을 하니 소(昭)를 특진, 검교태보檢校太保, 사지절使持節, 현도주도독, 대의군사, 고려국왕으로 삼았다. 현덕 2년(951, 광종 2년)에 다시 사신을 보내 조공하여 (소(昭)를) 개부의동삼사(加開府儀同三司), 검교태위로 높여주고 또 태사(太師)를 더하였다.
昭(고려광종): 建隆三年十月,昭遣其廣評侍郎李興祐、副使李勵希、判官李彬等來朝貢. 건륭(建隆) 3년(962년) 10월 소(昭; 고려광종)가 광평시랑 이흥우(李興祐)와 부사(副使) 이여희(李勵希), 판관(判官) 이반등(李彬等)을 보내 와 조공하였다.
四年春,降制曰:「古先哲后,奄宅中區,曷嘗不同文軌於萬方,覃聲教於四海?顧予涼德,猥被鴻名,爰致賓王,宜優錫命.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高麗國王昭,日邊鍾粹,遼左推雄,習箕子之餘風,撫朱蒙之舊俗.而能占雲候海,奉贄充庭,言念傾輸,實深嘉尚.是用賜之懿號,醻以公田,載推柔遠之恩,式奬拱辰之志.於戲!來朝萬里,美愛戴之有孚.柔撫四封,庶混之無外.永保東裔,聿承天休.可加食邑七千戶,仍賜推誠順化保義功臣.」
4년(963년) 봄에 (송 태조가) 제서를 내려 가로되 「"옛날 옛적 슬기로운 임금이 중국땅(中區)을 포괄해 어루만질 적에는 글과 제도가 만방에 통일되었고 교화가 사방 바다(四海)에 넓게 미치지 아니하였겠소? 돌아보니 나는 얇은 덕으로서 외람되게 홍명을 물려 받아 이에 손님 왕이 오게 되었으니, 정중히 명을 내리오.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검교태사(檢校太師), 현도주도독(玄菟州都督), 충대의군사(充大義軍使), 고려국왕(高麗國王) 소(昭)는 태양의 정기가 뭉쳐 요좌(요하 왼쪽)에서 영웅으로 추대되어 기자(箕子)가 남긴 풍속을 익히고 주몽(朱蒙)의 옛 풍속을 따랐다. 그리고 구름과 바다를 살펴 공물을 바쳐 궁궐을 채우니 그 쏟은 정성을 생각하면 실로 매우 가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의호(懿號)를 하사하는 동시에 공전(公田)으로 보답하며, 이어 받들어 먼곳 백성을 화목하게 하여 따르게 한걸 감사히 여기고, 공신(拱辰:사방의 인민이 천자의 덕화에 귀의하여 복종함)의 뜻을 칭찬하는 바이오.아아! 만리를 와 배알하니 받듬이 참으로 아름답고 미쁘도다. 사대(四封)를 회유하고 있으며, 바라건대 어지럽히거나 비뚤어지지 말고 영원히 동예(東裔)를 보전하여 마침내는 하늘의 도움을 받들길 바란다. 식읍 7천호으로 보답하고에 추성순화보의공신(推誠順化保義功臣)을 내리겠다."」 라 했다. 其年九月,遣使時贊等來貢,涉海,值大風,船破,溺死者七十餘人,贊僅免,詔加勞恤 그 해 9월에 사신 시찬(時贊) 등을 보내와서 공물을 바쳤다. 바다를 건너다가 큰 풍랑을 만나 배가 부셔줘 익사한 사람이 70여인이나 되었는데, (시)찬은 간신히 벗어나서 (태조가) 조서를 내려 위로하였다.
開寶五年,遣使以方物來獻,制加食邑,賜推誠順化守節保義功臣.進奉使內議侍郎徐熙加檢校兵部尚書,副使內奉卿崔鄴加檢校司農卿並兼御史大夫,判官廣評侍郎康禮試少府少監,錄事廣評員外郎劉隱加檢校尚書、金部郎中,皆厚禮遣之. 개보(開寶) 5년에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치니, 제서를 내려 식읍을 더하여 주고 추성순화수절보의공신(推誠順化守節保義功臣)이라 명했다. 진봉사進奉使인 내의시랑(內議侍郞) 서희(徐熙)에게는 검교병부서(檢校兵部尙書)를 더하고, 부사인내봉경(內奉卿) 최업(崔鄴)에게는 검교사농경(檢校司農卿)과 어사대부(御史大夫) 병겸해 더하고, 판관(判官)인 광평시랑(廣評侍郞) 강례(康禮)에게는 소부소감(少府少監)을 더하고, 녹사인 광평운외랑(廣評員外郞)유은(劉隱)에게는 검교상서(檢校尙書), 금부낭중(金部郞中)을 더하여 주고, 모두 후하게 예우해 돌려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