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定安國本馬韓之種,為契丹所攻破,其酋帥糾合餘破,保于西鄙,建國改元,自稱定安國.開寶三年,其國王烈萬華因女真遣使入貢,乃附表貢獻方物.太平興國中,太宗方經營遠略,討擊契丹,因降詔其國,令張掎角之勢,其國亦怨寇讎侵侮不已,聞中國用兵北討,欲依王師攄宿憤,得詔大喜.
정안국(定安國)은 본디 마한(馬韓)의 종족인데, 거란(契丹)에게 쳐 깨지니 그 추수(酋帥)가 남은 무리를 규합해, 서쪽 변방을 지켜 나라를 세우고 개원(改元)하니 자칭(自稱)으로 정안국이다. 개보(開寶) 3년(970, 고려 광종 21년) 그 국왕 열만화(烈萬華)가 여진(女眞)을 따라 사신을 보내 입공(入貢)해 이에 부표(附表)를 바치고 방물을 올렸다. 태평흥국(太平興國) 중(976~983, 고려 경종 원년~ 성종 2년)에 태종(太宗)이 원략(遠略) 경영(經營계획(計劃)을 세워 사업(事業)을 해 나감 )을 하여 거란을 토벌하려 라면서 그 나라에 조서를 내려 기각(掎角)의 형세를 펼치도록 하니, 그 나라도 구수(寇讎)들이 침범을 그치지 않는 것을 원망하던 터에 중국이 군사를 써 토벌한다는 것을 듣고 왕사(王師)에 의하여 분함을 씻을 수 있을까 하여 조서를 받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六年冬,會女真遣使來貢,路由本國,乃托其使附表來上云:「定安國王臣烏玄明言:伏遇聖主洽天地之恩,撫夷貊之俗,臣玄明誠喜誠抃,頓首頓首.臣本以高麗舊壤,渤海遺黎,保據方隅,涉歷星紀,仰覆露鴻鈞之德,被浸漬無外之澤,各得其所,以遂本性.而頃歲契丹恃其強暴,入寇境土,攻破城砦,俘略人民,臣祖考守節不降,與衆避地,僅存生聚,以迄于今.而又扶餘府昨背契丹,並歸本國,災禍將至,無大於此.所宜受天朝之密畫,率勝兵而助討,必欲報敵,不敢違命.臣玄明誠墾誠願,頓首頓首.」其末題云:「元興六年十月日,定安國王臣玄明表上聖皇帝前.」
6년(981) 겨울에 때마침 여진의 조공 사신의 길이 본 나라를 경유하게 되자, 그 사신에게 부탁해 부표를 올려 부쳐 이르기를 “정안국왕 신(臣) 오현명(烏玄明)이 말씀드립니다. 성주(聖主)의 하늘과 땅에 두루 미친 은혜를 입어 오랑캐(夷)의 풍속을 단속하고 있으니, 신 현명은 참으로 기뻐서 손뼉을 치고 머리를 조아리고 조아립니다. 신은 본디 고려(高麗; 고구려)의 옛 땅인 발해(渤海)의 유민으로서, 한쪽 귀퉁이에 웅거하여 여러해를 지내오는 동안 고르게 감싸준 은혜를 우러러 보고 한량없이 적셔준 덕택을 입어 저마다 그 살 곳을 얻어 본성(本性)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세(頃歲; 근년)에 거란이 그 강포(强暴)함을 믿어 경토(境土)에 들어와 도적질 하고, 성채들을 쳐서 깨뜨리고 인민들을 사로 잡아갔으나, 신의 조고(祖考)께서 절개를 지켜 항복하지 않고, 군신(群臣)과 더불어 피하여 다를 지역으로 가 겨우 백성들을 보존해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또 부여부(扶餘府)가 지난날 거란을 배반하고 모두 본국으로 돌아왔으니 재화(災禍)가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조(天朝)의 은밀한 꾀를 받아 승병(勝兵)을 거느리고 가 토벌을 도와 기필코 원수를 갚을 것이며, 감히 명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신 현명은 진실로 정성을 다하며 기원하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라고 했으며 그 머리말 끝에 이렇게 일렀다. “원흥 6년 10월 일(日)에 정안국왕 신 현명은 성황제(聖皇帝) 앞에 표(表)를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