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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전쟁 관련3>소배압(蕭排押)열전(附:소항덕) 2010-02-04 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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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배압(蕭排押) 항덕(恒德)


  蕭排押,字韓隱,國舅少父房之後.多智略,能騎射.



    소배압(蕭排押)은 자(字)는 한은(韓隱) 국구(國舅) 소부방(少父房)의 후손(後孫)이다. 지략(智略)이 많고, 기사(騎射)에 능(能)하였다.



  統和初,為左皮室詳穩,討阻卜有功.四年,破宋將曹彬、米信兵于望都.凡軍事有疑,每預參決.尋總永興宮分糺及舍利、拽剌、二皮室等軍,與樞密使耶律斜軫收復山西所陷城邑.是冬,攻宋,隸先鋒,圍滿城,率所部先登,拔之,改南京統軍使.尚衛國公主,拜駙馬都尉,加同政事門下平章事.



    통화(統和) 초(初)에 좌파실상온(左皮室詳穩)이 되었고,  조복(阻卜)을 토벌하는데 공(功)이 있었다. 4년(986)에 송(宋)나라 장수 조빈(曹彬)를 깨트리고, 망도(望都)에서 미신(米信)의 군대를 부셨다. 무릇 군사(軍事)에 의심할 일이 있으면 늘 관계(關係)하여 결단하였다. 거듭하여 영흥궁분규(永興宮分糺)와 사리(舍利), 예랄(拽剌)를 총괄하였으며, 추밀사(樞密使) 야율사진(耶律斜軫)과 함께 산서(山西)의 함락된 성읍(城邑)을 수복(收復)하였다. 이해 겨울에 송을 공격 하였는데, <배압이> 선봉(先鋒)을 부려 만성(滿城)을 포위하다. <배압은> 인솔부대를 이끌고 가장 먼저 <성벽에> 올라가 성을 빼앗았다. 벼슬을 고쳐 남경통군사(南京統軍使)가 되었다. 위국공주(衛國公主)에게 장가들자 부마도위(駙馬都尉)에 제수되었고 동정사문하평장사(同政事門下平章事)직이 더해졌다.



  十三年,歷北、南院宣徽使.條上時政得失,及賦役法,上嘉納焉.十五年,加政事令,遷東京留守.二十二年,復攻宋,將渤海軍,下德清軍.後蕭撻凜卒,專任南面事.宋和議成,為北府宰相. 



    13년(995)에 역북(歷北) 남원선휘사(南院宣徽使)로 삼았다. <배압이> 정사(政事)의 득실(得失)과 부역법(賦役法)을 조목대로 올리니, 황상이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15년(997)에 정사령(政事令)직이 더해지고 동경유수(東京留守)로 옮겼다. 22년(1004)에 다시 송을 공격하였다. <배압은> 발해군(渤海軍)을 이끌고서 덕청군(德清軍)을 떨어트렸다. 뒤에 소달름(蕭撻凜)이 졸(卒)하자, 남면(南面)으 일을 맡겼다. 송과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북부재상(北府宰相)으로 삼았다.



  聖宗征高麗,將兵由北道進,至開京西嶺,破敵兵,斬數千級.高麗王詢懼,奔平州.排押入開京,大掠而還.帝嘉之,封蘭陵郡王.開泰二年,以宰相知西南面招討使.五年,進王東平.



    성종(聖宗)이 고려(高麗)를 친정(親征)【註1】하자 군대를 이끌고 북도(北道)로 진격하였다. 개경(開京)의 서령(西嶺)에 이르러서, 적병(敵兵)을 깨트리고 수천 급(級)을 베었다. 고려왕(高麗王) 순(詢)은 두려워하여 평주(平州)로 달아났다. 배압은 개경에 들어가 크게 약탈(掠奪)을 하고 돌아왔다. 황제(皇帝)가 기뻐하여 난릉군왕(蘭陵郡王)에 봉(封)하였다. 개태(開泰) 2년(1013)에 재상지서남면초토사(宰相知西南面招討使)로 삼았다. 5년(1016)에 동평왕(東平王)에 봉해졌다,



  排押為政寬裕而善斷,諸部畏愛,民以殷富,時議多之.七年,再伐高麗,至開京,敵奔潰,縱兵俘掠而還.渡茶、陀二河,敵夾射,排押委甲仗走,坐是免官. 



    배압은 정사를 너그럽게[寬裕] 하면서 선단(善斷)하여 제부(諸部)들이 존경하여 사랑하고 백성(百姓)들이 풍성하고 넉넉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의견으로는, <배압을> 아름답게 여겼다.  7년(1018)에 다시 고려를 정벌(征伐)하였다.【註2】 적이 달아나 흩어지자 군사를 풀어 포로를 잡고 약탈한 뒤에 돌아왔다. <배압이> 차하(茶河), 타하(陀河) 두 하천(河川)을 건널 때에 적들이 좌우에서 활을 쏘았다.【註3】 배압은 갑주(甲冑)와 병장기(兵仗器)를 버리고 달아났다.【註4】 이에 연좌되어 면관(免官)되었다.【註5】



  太平三年,復王豳,薨.弟恒德.


    태평(太平) 3년에 다시 빈왕(豳王)으로 봉해졌다. <뒤에> 훙(薨)하였다. 아우는 항덕(恒德)이다.



  恒德,字遜寧.有膽略而善謀.

    항덕(恒德)은 자(字)가 손녕(遜寧)【註6】이다. 담략(膽略)과 선모(善謀)가 많았다.


  統和元年,尚越國公主,拜駙馬都尉,遷南面林牙.從宣徽使耶律阿沒里征高麗還,改北面林牙.會宋將曹彬、米信侵燕,耶律休哥與恒德議軍事,多見信用,為東京留守.



    통화 원년(983)에 월국공주(越國公主)에 장가드니 부마도위(駙馬都尉)에 제수되고 남면림아(南面林牙)로 벼슬을 옮겼다. 선휘사(宣徽使) 야율아몰리(耶律阿沒里)따라 고려(高麗)를 친 뒤에 돌아왔다. 북면림아(北面林牙)로 고쳐 삼았다 송나라 장수 조빈과 미신이 함께 연(燕)을 침범하자 야율휴가(耶律休哥)와 항덕이 더불어 군사(軍事)를 의논하니 더 낫게 보아 신용을 얻어 동경유수(東京留守)가 되었다.



  六年,上攻宋,圍沙堆,恒德獨當一面.城上矢石如雨,恒德意氣自若,督將士奪其陴.城陷,中流矢,太后親臨視,賜藥.攻長城口,復先登,太后益多其功.時高麗未附,恒德受詔,率兵拔其邊城.王治懼,上表請降.



    6년(988)에 황상이 송을 공격하여 사퇴(沙堆)를 포위하니 항덕의 홀로 1면을 담당하게 되었다. 성위에서 돌과 화살을 비같이 퍼붓자, 항덕은 의기(意氣)가 태연하게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그 성가퀴를 빼앗았다.  성이 함락되니 유시(流矢)를 맞았는데, 태후(太后)가 친히 보고 약(藥)을 하사하였다. 장성구(長城口)를 치자 <항덕이> 다시 제일먼저 <성에> 오르니 태후가 그 공을 더욱 아름답게 여겼다. 이때【註7】 고려가 복종하지 않자, 항덕이 조서(詔書)를 받들어 병사를 이끌고【註8】 그들의 변성(邊城)을 쳐서 빼앗았다. 왕치(王治)【註9】 <이를> 두려워하여 표(表)를 올려 항복하길 청(請)하였다.


(하략)



【註1】1010년의 일.



【註2】조을 내려 동평군왕 소배압을 도통(都統), 소허열(蕭虛烈)을 부도통(副都統), 동경유수(東京留守) 야율팔가(耶律八哥)를 도감(都監)으로 삼아 다시 고려를 정벌하게 하였다.


 ○七年, 詔東平郡王蕭排押爲都統, 蕭虛烈爲副統, 東京留守耶律八哥爲都監, 復伐高麗.-『遼史』권115「二國外記」


 詔以東平郡王蕭排押為都統,殿前都點檢蕭虛列為副統,東京留守耶律八哥為都監伐高麗.

 -『遼史』권16 「聖宗」開泰 7年 冬10月 丙辰

 『高麗史』와 『高麗史節要』에는 소배압을 遜寧이라 기록하였지만 『遼史』의 이 기록에 따르면 배압이 맞다.



【註3】거란병이 귀주를 지나니 감찬 등이 동쪽들에서 맞아 크게 싸웠는다. 양편의 군사가 서로 버티어 승패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김종현이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왔다. 갑자기 비바람이 남쪽에서 불어 깃발이 북쪽을 가리키자 우리 군사가 형세를 타고 용기백배(勇氣自倍)하여 공격하였다. 거란병이 패하여 북쪽으로 도망하니 우리 군사가 뒤쫓아 쳐서 석천(石川)을 건너 반령(盤嶺)에 이르렀다.


 丹兵過龜州。邯贊等邀戰於東郊。兩軍相持。勝敗未決。宗鉉引兵赴之。忽風雨南來。旌旗北指。我軍乘勢奮。擊勇氣自倍。丹兵奔北。我軍追擊之。涉石川。至于盤嶺。

-『高麗史』권94「姜邯贊」2月, 『高麗史節要』권3 顯宗 10년 2月 己丑朔



【註4】죽어 넘어진 시체가 들판을 덮고, 사로잡은 군사와 말ㆍ낙타ㆍ갑옷ㆍ투구ㆍ병기는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었으며, 살아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뿐이었으니, 거란의 패전함이 이때와 같이 심한 적은 없었다.


 僵尸蔽野。俘獲人口。馬駝。甲冑。兵仗。不可勝數。生還者。僅數千人。契丹之敗。未有如此之甚。-『高麗史』권94「姜邯贊」2月, 『高麗史節要』권3 顯宗 10년 2月 己丑朔



  이달에, 소배압이이 고려와 차하와 타하 사이에서 싸웠는데, 요군 불리하여 천운天雲ㆍ우피실(右皮室) 2군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았으며, 처운군상온(天雲軍詳穩) 해리(海里),, 요련장상온(遙輦帳詳穩) 아과달(阿果達), 객성사(客省使) 작고(酌古), 발해상온(渤海詳穩) 고청명(高淸明) 등은 싸움터에서 모두 전사하였다


  是月,蕭排押等與高麗戰于茶、陀二河,遼軍失利,天雲、右皮室二軍沒溺者衆,遙輦帳詳穩阿果達、客省使酌古、渤海詳穩高清明、天雲軍詳穩海里等皆死之.

 -『遼史』권16 「聖宗」開泰 7年 12月



【註5】거란주가 소식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사자를 보내어 손녕에게 꾸짖기를, “네가 적을 깔보고 깊이 들어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볼 것이냐. 짐이 마땅히 네 낯가죽을 벗긴 후에 죽일 것이다."라 하였다.

 契丹主聞之。大怒。遣使責遜寧曰。“汝輕敵深入。以至於此。何面目見我乎。朕當皮面。然後戮之.”-『高麗史』권94「姜邯贊」2月, 『高麗史節要』권3 顯宗 10년 2月 己丑朔


  여기서 ‘손녕‘은 배압을 말한다.



【註6】『高麗史』와『高麗史節要』에는 고려 성종기에 침공한 거란장수가 ‘손녕’이라 나와  있는데, 『遼史』의 이 기록으로 보아 손녕은 자이고 본명이 항덕인 것을 알 수 있다.



【註7】993년. 



【註8】 소항덕은 이때 자신의 군대가 80만이라 큰 소리쳤지만, 『遼史』「兵衛志」에 따르면 ‘도통을 임명하지 않으면 기병 6만을 보내는 것으로 그친다,.(不命都統,止遣騎兵六萬)‘라 되어있는데, 항덕이 도통으로 임명 받은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동경유수가 지휘 할 수있는 동경 소속 향정(鄕丁)이 한때 4만1천700명가량(『遼史』「兵衛志」)인 것을 볼 때 항덕이 동원 할 수 있는 병력은 최대가 6만 정도이다.


【註9】고려 성종(成宗)

p.S: 이번것도 발번역에 발주석인것 같습니다.

태그 : 여요전쟁,고려,거란 추천 : 38, 조회 : 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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