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歷佛 註 - 이 글은 2005년 4월에 일본인 y*****가 한일번역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金歷佛은 이 글의 논지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조선에 대하여 '동방 예의(禮儀)의 나라'다 등으로 듣습니다만, 허언하면 안 됩니다. '禮儀'가 아니라 '禮義'이므로 틀리지 않도록.
'東方禮儀之國' (X) '東方禮義之國' (O)
'禮儀'란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일한(日韓)에서 똑같이
禮儀【한국측】(NAVER 사전)
禮儀〔-의/-이〕 [명사] 사회생활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예로써 공손하게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 ¶ 예의가 바르다. ¶ 예의를 지키다. ¶ 예의는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예의범절·예절. 禮儀【일본측】(Goo 국어사전)
(1)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타인과의 교제를 위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작법(作法). 예절. 「-바르게 인사하다」「-작법」 →禮(1) (2) 사례(謝禮). 「-는 얼마나 준비하면 좋을까요/하나시본(咄本)·세이스이쇼(醒睡笑)」 라는 의미로 되어 있습니다만, 한문상의 의미에서는 다릅니다. '의식(儀式)'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경우 예(禮)를 나타내는 형태, 모양을 의미합니다.
의【儀】(Goo 국어사전)
一(명사) (1) 의식(儀式). 전례(典禮). 「결혼의 -」「대장(大葬)의 -」 (2) 사정. 일. 형식명사적인 용법. 「그 -만은 용서해 주세요」「지금 온 것은 다른 -이 아니라/요쿄쿠(謡曲) '나카미츠(仲光)'」 예1 : '길례(吉禮)'
예2 : '가례(嘉禮)'
세종실록 권132 오례 영칙서의(迎勅書儀) 
번역문 의(儀)란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조선에서 주장되고 있었던 禮義의 나라란 무엇인가라면 답은 이하입니다.
新校本宋史 列傳 卷四百八十七 列傳第二百四十六 外國三 高麗 신교본 송사 열전 권487 열전 제246 외국3 고려
惟王久慕華風,素懷明略,效忠純之節,撫禮義之邦。 (고려)왕은 오래도록 중화의 풍속을 사모하여 평소 현명한 책략을 품고 충순(忠純)의 절개에 힘쓰며 禮義의 나라를 돌본다. 清史稿 列傳 卷五百二十六 列傳三百十三 屬國一 朝鮮 청사고 열전 권526 열전313 속국1 조선
朝鮮國王奉事我朝 小心敬慎 其國聞有八道 北道接瓦爾喀地方土門江 東道接倭子國 西道接我鳳凰城 南道接海外 尚有數小島 太宗平定朝鮮 國人樹碑於駐軍之地 頌德至今 當明之末年 彼始終服事 未嘗叛離 實屬重禮義之邦 尤為可取 조선국왕은 우리 조정(청나라)을 받들어 섬기는데 조심하고 공경하며 근신한다. 그 나라에는 팔도(八道)가 있는데, 북도(北道)는 와이객(瓦爾喀) 지방의 토문강(土門江)과 접하고 동도(東道)는 왜자국(倭子國)과 접하며 서도(西道)는 우리의 봉황성(鳳凰城)과 접하고 남도(南道)는 해외(海外)와 접하며 몇 개의 작은 섬이 있다고 한다. 태종께서 조선을 평정하자 국인(國人)이 주군지(駐軍地)에 비(碑)를 세우고는 오늘날까지 덕을 기리고 있다. 명나라의 말년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시종 (명나라를) 섬기며 복종하여 일찍이 배반한 적이 없으니 실로 禮義를 중시하는 나라에 속하므로 더욱 취할 만하다. 태종실록 8년 3월조 
번역문※ 金歷佛 註 - 이 번역문에는 禮義가 禮儀로 잘못 기재되어 있습니다.시악화성(詩樂和聲)  시악화성은 시악의 성음(聲音)과 절주(節奏)를 분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변성(辨聲)인데 화성(和聲)이라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우리 성상(聖上)께서 시악(詩樂)의 편찬을 명한 것이 어찌 다만 옛 기송(記誦)만을 맡으라는 것이겠는가. 성음과 절주가 그릇된 것을 탄식하여 시악의 편찬으로 화성의 섬돌로 삼으려는 것이다. 또 화성을 되돌림에 변성이 있으니 고로 변성이라 하지 않고 화성이라 한 것이다. 대저 우리나라는 禮義와 문헌(文獻)의 나라인데, 묘악(廟樂)이 어그러지고 아악(雅樂)과 속악(俗樂)이 자리를 잃으니 선조조부터 영종조까지 분발하여 반드시 바로잡고자 하여 널리 조야(朝野)에 물었으나 그에 부응하는 사람이 없어 필경에는 순환할뿐 갱신하지 못하였다. ※ 禮義가 없는 곳
晉書卷一百十四 載記第十四 苻堅下 진서 권114 재기 제14 부견 하
明年 呂光發長安 堅送於建章宮 謂光曰西戎荒俗 非禮義之邦 羈縻之道 服而赦之 示以中國之威 導以王化之法 勿極武窮兵 過深殘掠 다음해에 여광이 장안을 떠났다. 부견이 건장궁에서 전송하며 여광에게 말했다. "서융은 황속(荒俗)하고 禮義의 나라가 아니다. 기미(羈縻)의 도(道)는 복종하면 용서하여 중국의 위엄을 보이고 왕화(王化)의 법(法)으로 이끄는 것이니 무력을 남용하거나 과한 잔략(殘掠)을 하지 말라." 보시는 바와 같이 【禮義】입니다. 이 경우의 【禮義】란, 예(禮)와 의(義)의 의미입니다. 【禮】는 예기(禮記)로 유명하고, 【義】란 이 경우 예기 예운편(禮運編) 등에서 보이는 십의(十義)를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입니다.
예기 예운 제9
何謂人義 父慈子孝兄良弟弟夫義婦聽長惠幼順君仁臣忠 十者謂之人義 인의(人義)란 무엇인가. 아버지는 인자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순종하며 어른은 자애롭고 어린이는 유순하며 임금은 인자하고 신하는 충성하는 이 열가지를 일러 인의라 한다. 만약을 위해 일한의 웹 사전에서 조사해 봅시다. 제대로 【禮義】와 【禮儀】를 구별하고 있네요.
禮義【한국측】(NAVER 사전)
禮義〔-의/-이〕 [명사] 예절과 의리. 禮義【일본측】(Goo 국어사전)
예(禮)와 의(義). 사람이 행해야 할 규율. 동방예의(東方禮儀)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 그 언설사(言說史)까지는 알아보지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유교의 이야기라면 통상 【禮義의 나라】입니다. 【禮儀의 나라】라는 호칭이 없다고 단언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보통은 거의 있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고로 단기고사(檀奇古史)에 실린 동이열전에 있는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入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 禮儀의 군자국이라 하겠다. 따위는 가소로운 것으로, 대체 누가 이런 말 바꾸기를 시작한 것인지. 너희가 그러고도 유교를 국시로 했던 일족의 후예인가.
그런데 동방예의국(東方禮儀國)의 근거로서 단기고사의 '공빈(孔斌)'이 자주 나옵니다만, 자칭(自稱) 이외에 '동방 禮義의 나라'의 근거는 무엇이 있을까요? 동방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고, 禮義의 나라라는 것도 산견됩니다만, 조선이 東方禮義의 나라이다 라는 것은 조선실록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 밖에 동방예의의 나라라고 쓰여진 예가 있습니까?
청사고는 후대에 아마도 조선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고, 일본측에서도 통신사에 얽힌 자료에서 나옵니다만, 이것 역시 아마도 조선의 주장이 전해진 뒤의 것입니다. 자칭이 아닌, 조선을 '東方禮義(禮儀)國'이라고 한 명대 이전의 사료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가르쳐 주실 수 없을까요.
참고로 조선출병(임진왜란) 때 명나라측에는 조선이 배반하여 일본의 첨병이 되어 명나라로 길 안내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진 적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널리 전해진 것 같은데, 후에 오원췌(伍袁萃)의 '임거만록(林居漫録)', 황광승(黄光昇) 찬 '소대전칙(昭代典則)' 등에는 왜와 통했다고 쓰여지고, 이를 안 이씨 조선은 당황하여 시정을 구하는 변무사(辨誣使)를 보냅니다.(이에 대해서는 일한역사공동연구에 보고가 나와 있습니다. 조선침략 전야의 일본 정보 - 요네타니 히토시(米谷均))
명나라로부터 "왜와 통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된 조선은 당연히 변명을 하는데, 그 관련 사료로서 서애(유성룡) 선생 문집 『진왜정주문(陳倭情奏文)』이 있습니다. 여기엔 명나라의 절강순무(浙江巡撫)의 글이 인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주제인 '禮義의 나라'가 나옵니다.
 그는 조선을 "대대로 국은(國恩)을 받아 禮義의 나라를 칭할만큼 충순(忠順)했으므로 (중략) 배반했는지 아닌지는 확인해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禮儀의 나라'가 아니고 '禮義의 나라'군요.
청나라 사람에 의한 '禮義의 나라' 발언은 위에서 청사고를 인용했습니다만(彼始終服事未嘗叛離實屬重禮義之邦), 이번에는 명나라 사람에 의한 '禮義의 나라' 발언(인용입니다만)을 소개했습니다.
물론 그대로 취할 것이 아니라 평가 기준은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禮義의 나라라고 칭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金歷佛 注 - 일본 역시 禮義의 나라로 칭해진 적이 있습니다. 가령 '곡강집(曲江集)', '문원영화(文苑英華)' 등에 수록된 칙일본국왕서(勅日本國王書)를 보면, 당(唐) 현종(玄宗)은 일본을 禮義의 나라로 지칭하며 성무천황(聖武天皇)에게 칙서를 내리고 있습니다.(勅日本國王主明樂美御德彼禮義之國神靈所扶滄溟往來…)
'예악(禮樂)'의 예(禮)군요. 위의 글은 지금의 한국, 지금의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옛 사료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시면 기쁩니다.
일본인은 야만스럽네요…. 반성합시다.♪
승정원일기 철종12(1861)년 6월 19일  주상(철종)께서 "우리나라의 농사 형편은 어떠한가" 라고 말씀하시니 휘림(趙徽林)이 말하기를 "근일에 우양(雨暘)이 조균(調均)하니 콩 팥 화곡이 장차 대풍할 조짐이며 보리는 비록 약간의 손실이 있으나 흉작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금번의 (열하(熱河)로의) 별행(別行)은 격을 벗어난 은상(恩賞)으로 보아 황상(함풍제)께서 특별히 후한 예(禮)를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조신(朝臣)들이 전하는 바를 들었는데 '이번에 다른 열국들은 (함풍제를) 알현하지 않았으나 오직 동국(東國: 조선)만이 홀로 알현하였으니 귀국(貴國)이 일심(一心)으로 사대(事大)하는 정성은 매우 흠탄(欽嘆)할만하다. 진정 禮義의 나라이다.'라고 하셨다 합니다." 주상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위태로운 시기에 처하였는데, 사대(事大)의 도(道)에 있어서 어찌 한번 문안 드리는 예(禮)가 없을 수 있겠는가?"※ 金歷佛 注 - 당시 함풍제는 영불연합군이 북경으로 진격하자 열하로 피신한 상태였음. 오직 하나뿐인, 진정한 禮義의 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