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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전통건축 비교 - 가구(架構) 1 2008-04-09 10:15:27
金歷佛
※ 金歷佛 註 - 이 글은 2007년 5월에 일본인 c*********가 한일번역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金歷佛은 이 글의 논지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일본 건축의 가구(架構)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글. …을 반년쯤 전에 투고했습니다만, 지난 주에 어쩐 일인지 삭제되어 버렸으므로 리메이크판을 재투고합니다.

'가구(架構)'란 '지붕을 지탱하는 구조' 정도의 의미로, '건물의 골격'이라고 말을 바꾸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본 건축은 대륙의 가구 형식을 이입한 8세기부터 1000년 정도의 역사 속에서 큰 변화를 이루었고, 특히 대규모 건축의 조영(造營)을 용이하게 하는 기법을 획득하여 왔습니다. 그 성과는 근세의 일본과 조선의 대규모 건축의 가구를 비교해 보면 일목요연합니다.


창덕궁 인정전


니시혼간지 아미다도(서본원사 아미타당)

덧붙여서 인정전은 이조의 별궁인 창덕궁의 정전(正殿)입니다.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인 경복궁 근정전도 이것을 모델로 하여 지어졌습니다. 한편 아미다도는 신슈(眞宗/진종)의 총본산인 혼간지(本願寺/본원사)에 지어진 불당(佛堂)으로, 근세의 전형적인 대규모 건축의 가구가 쓰이고 있습니다. 인정전의 지붕이 주상(柱上)의 들보로 그대로 지탱되고 있는데 비해, 니시혼간지 아미다도에는 지붕 밑에서부터 들보까지 광대한 공간이 갖추어져 있고 거기에 정글짐 모양으로 정연하게 구성된 가구가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한(日韓)의 가구 차이가 생긴 경위를 차례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출발점(8C)


중국 건축의 가장 시원적(始原的)인 가구 형식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워 기둥 위에 들보, 그 위에 도리를 실어서 도리를 지점(支點)으로 하여 서까래를 얹고 그 위에 지붕을 싣는다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간구(間口: 폭) 방향으로는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만, 오행(奧行: 깊이) 방향으로 확장할 경우 지붕과 들보 사이에 큰 거리가 비어 버리므로 안정적으로 지붕을 떠받치기가 곤란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건물의 내부로 갈수록 기둥을 높게 하여 지붕을 지탱하는 수법이 채택되고 있었습니다. 보조적으로 기둥 위에 싣는 들보를 이중(二重)으로 하여 들보와 지붕 사이의 거리를 메우는 방법도 쓰였습니다만, 오행이 길어짐에 따라 보다 장대한 재목(材木)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또한 기둥의 배치는 지붕의 형태를 엄밀히 따라야만 했으므로 공간의 배치는 높은 기둥으로 둘러싸이는 모야(母屋: 한국명 내진칸(內陣間))와 낮은 기둥으로 둘러싸이는 히사시(庇: 한국명 외진칸(外陣間))로 이분되는 평면 구성으로 고정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고대 중국 건축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토쇼다이지 콘도(당초제사 금당)

이러한 중국 건축의 가구 형식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8세기의 일입니다.(놀랍게도 7세기 말의 호류지 콘도(法隆寺 金堂/법륭사 금당)는 중층(重層)의 외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기둥은 모두 같은 높이로, 게다가 들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체 백제인은 무엇을 전했는가? 로 대략 1시간.) 759년에 지어진 일본의 토쇼다이지(唐招提寺/당초제사)는 그 중국 건축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야네(野屋根)의 발생(10C)

여기서부터 출발하는데, 어찌하여 일본 건축의 지붕에 저런 광대한 공간이 생겼는가 하면, 본디 처마를 길게 할 목적으로 지붕을 휘게 했을 때 생기는 지붕면과 서까래 사이의 공간을 한국처럼 지붕 흙으로 다 메우지 않고, 일부러 지붕을 이중으로 하여 간극(틈)을 만든 것이 발단이라고 합니다. 지진을 무서워한 고대의 일본인이 지붕 하중의 증대를 싫어했는지, 혹은 비에 노출되어 썩기 쉬운 지붕의 유지 보수에 있어서의 편리를 노렸는지 뚜렷한 동기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이 작은 변화를 계기로 일본 건축은 중국 건축으로부터 한 걸음 내딛게 됩니다.



◆이중 지붕 구조의 획득(12C)

이렇듯 크지 않던 간극이 왜 커졌는지 말하자면, 그것은 고대 일본의 사회 변화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8세기의 일본에서는 불교 교단이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9세기 이후 점차 붕괴하여 불교 교단이 교단 내부에서 자립적으로 의사 결정을 실시할 수 있는 조직체제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승려간의 계급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불교 의식으로도 반영하기 위하여 기존의 불당을 신분이 높은 승려가 쓰는 공간과 낮은 승려가 쓰는 공간으로 나누고 저마다 의식을 행하는데 충분한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청되었습니다. 고대 불당의 평면 구성을 간구 방향으로 확장하여도 계급차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오행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에 답하기 위하여 우선 불당을 두 개 연결하거나 히사시를 추가하거나 하여 오행을 확장하는 개축을 했습니다.


타이마데라 만다라도(당마사 만다라당) 제2차 전신(前身)

그러나 히사시를 추가하는 개축은 지붕의 구배(경사)가 완만해져 비가 새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두 개의 불당을 접속하여도 접속 부분의 비의 처리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전대(前代)까지 정착되고 있었던 지붕의 간극을 일거에 넓히고는 아래와 같이 지붕 위에 동자기둥(童子柱)을 세워서 또 하나의 지붕으로 가려버리는 구조가 고안됩니다. '노고야(野小屋)' - 들보 위에서부터 지붕까지의 가구 부분 - 의 탄생입니다. 12세기경에는 이러한 형태로 개축된 불당이 전국적으로 나타나는데, 신축 불당도 이것을 모방하게 되었습니다.


타이마데라 만다라도


◆하네기(桔木)의 발명(12C)

그리고 이 지붕 내부의 공간이 생김으로 인해 지붕 하중을 지렛대식으로 지탱하는 '오다루키(尾垂木: 한국명 하앙(下昂))'라는 고대의 부재(部材)가 지붕의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하네기(桔木)'라고 불리는 일본의 독자적인 기법입니다. 지붕의 내부에 들어가는게 어떤 이점이 있는가 하면, 외관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굵은 목재를 전혀 장식하는 일 없이 지붕의 내부에 끼워 넣음으로써 오다루키보다도 큰 하중을 부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부(軸部)에의 누키(貫)의 도입(13C)

더군다나 13세기에 송(宋)의 건축 양식이 수입되어, 이 때 기둥을 목재로 관통시켜 기둥끼리 연결하는 누키(貫: 한국명 인방(引枋))라는 기법이 전해집니다. 마침 12세기말의 겐랴쿠(元暦)의 대지진으로 쿄토가 괴멸적인 타격을 받아 종래의 가구의 수평력(水平力)에 대한 취약함을 통감하고 있던 일본인은, 이 새로운 기법을 즉석에서 도입하여 축부를 강고히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일본 건축은 종래의 기둥이 각각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로부터 상자형의 축부 전체로 하중을 받는 구조로 변화합니다. 이후 근대까지 700년간 태풍이나 지진 등의 수평력에 대한 저항은 이 누키가 주역을 담당하게 됩니다.




◆하네기의 전개(14C)

누키에 의해 축부가 견고해지면 지붕의 내부에 숨어 있는 하네기의 이점이 최대한으로 발휘되게 됩니다. 종래에는 기둥 위에만 둘 수 있었던 하네기가, 축부가 강화됨으로써 외벽면상의 어디에든 얼마든지 배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를 배치하든 지붕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외관을 신경쓸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14세기부터 지붕의 내부는 하네기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지붕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고대의 부재인 공포나 서까래는 일본 건축에서는 역학적인 의미를 잃고 완전히 장식이 되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부재들은 실제로는 하네기에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쇼렌지 다이니치도(정련사 대일당)

하네기의 효과는 처마 끝의 하중이 지탱되고 처마가 길어져서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하네기는 지렛대이므로 처마뿐만이 아니라 내측(內側)의 지붕 하중도 누키로 견고해진 외벽에 모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측의 기둥을 훨씬 가늘게 할 수 있어서 좋고 솎아내는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기둥 수가 줄어들면 공간이 넓어져서 공간 배치의 자유도가 증가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대의 평면 구성의 정형(定型)이었던 모야·히사시로부터 일본 건축은 완전히 탈각하게 되었습니다.


지쇼지 토구도(慈照寺 東求堂/자조사 동구당) (1482) 평면


◆지붕틀에의 누키의 도입(15C)

더욱이 무로마치 시대에는 지붕의 내부에도 누키가 도입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전대(前代)까지의 동자기둥이 늘어서는 구조를 대신하여 정글짐 모양의 강고한 지붕틀이 탄생하여 지붕 자체가 독자적인 강도(强度)를 획득합니다. 이제는 광대한 내부 공간에 부응한 거대한 지붕을 떠받치기 위한 거목은 필요 없습니다. 또 하네기가 닿지 않는 내부의 지붕 하중은 '면(面)'으로 분산되므로 기둥을 놓을 위치의 제한은 극적으로 줄어들고 공간 배치는 더욱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니죠죠 니노마루 고텐 오히로마(이조성 이노환 어전 대광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근세 초기에는 대규모 내부 공간을 지닌 성곽어전(城郭御殿)이나 영주저택(大名屋敷), 불당 등이 전국적으로 건설되게 됩니다. 이미 거목을 다 베고 있었던 근세의 일본에서 거대한 건물이 차례차례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1000년에 이르는 일본 건축의 기술 발전 덕분입니다.


치온인 미에이도(知恩院 御影堂/지은원 어영당) (1639)


엔랴쿠지 콘폰츄도(延曆寺 根本中堂/연력사 근본중당) (1641)


니시혼간지 고에이도(西本願寺 御影堂/서본원사 어영당) (1636), 아미다도(阿彌陀堂/아미타당) (1730)


히가시혼간지 고에이도(東本願寺 御影堂/동본원사 어영당) (1895)


◆한편, 대륙에서는…

중국이든 한국이든 다포식(多包式)의 전개를 비롯하여 공포(栱包)의 양식 변천은 인정되지만, 일본과 같은 가구 자체의 큰 변화는 볼 수 없습니다. 적어도 대규모 건축에 장대한 부재를 필요로 하는 가구의 제약은 고대(古代) 그대로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조시대에는 대규모 건축이 규제되었기 때문에"
"구조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대규모 건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니까"
"한국은 백성과 조화를 이루는 좋은 나라였으므로 다른 나라처럼 백성을 수탈하여 큰 건물을 짓지 않았다"
"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하지 않았다"

등의 설명을 들었습니다만, 뭐 수요가 없었던 것이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꽤 어려운 부분입니다.

…대체로 그런 느낌입니다. m(__)m


 c********* - 니시혼간지의 고에이도는 같은 시대에 지어진 니죠죠의 어전보다 훨씬 더 크다. 신슈(眞宗)의 세력은 무섭네요.

 v*** - 신슈의 사원은 교의상 승려와 단가(檀家)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내진(內陳)보다 외진(外陳)이 커지기 쉬울 것입니다. 진종의 단가는 절을 자신들의 선조가 합력해서 세운 공유물이라고 생각하고.

 c********* - 니시혼간지 아미다도를 보러 갔을 때 어떤 법회에 어쩌다 낀 적이 있는데 확실히 외진이 넓었습니다. 덧붙여서 맨 위의 니시혼간지 아미다도의 단면도에서 마루가 조금 높아지고 있는 오른쪽 공간이 내진입니다.

 f***** - 대충 '신덴즈쿠리(寝殿造/침전조)' '쇼인즈쿠리(書院造/서원조)' 등으로 배웠었는데, 기둥과 가구의 극적인 변화 덕분이었군요.

 c********* - 그렇…군요. 쇼인즈쿠리는 주로 다다미가 깔린 거라든가 치가이다나(違い棚)라든가 건구(建具) 따위의 내장(內裝)에 있어서의 특징으로 설명됩니다만, 쇼인즈쿠리의 복잡한 공간 배치는 가구 자체의 변화가 전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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