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歷佛 註 - 이 글은 2008년 1월에 일본인 c*********가 한일번역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金歷佛은 이 글의 논지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유명한 착각입니다. 동심원에 직선을 겹치면 선이 중앙을 향해 굴곡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착각은 동심원이 없는 경우에도, 즉 우리가 일상에서 보통으로 물건을 볼 때도 역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건축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이 착각에 특히 민감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의 공장(工匠)들은 이 착각에 빠지게 되는 장소에서는 대항하고 어떤 장소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건물을 구성하는 선과 윤곽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궁구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축인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을 예로 취해 봅시다.
■엔타시스(배흘림)
무량수전을 볼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강하게 불룩한 기둥입니다. 엔타시스라고 불리는 기법으로, 상기의 착각 때문에 기둥의 중앙이 들어가 보이는 것에 대항하여 생긴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고대 동아시아 건축에서는 일본을 포함하여 보편적으로 쓰인 기법이었으나 이를 근세까지 보존한 것은 한국 건축뿐으로, '배흘림'이라는 고유어 명칭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 중국 | ·북위(北魏) - 운강석굴 벽화(雲崗石窟 壁畵, 4C)
남북조시대뿐. 이후 단절. | | 한국 | ·고구려 - 고분벽화(古墳壁畵, 5C~6C) ·백제 - 미륵사 석탑(彌勒寺 石塔, 600년경) 외 ·신라 - 감은사 삼층석탑(感恩寺 三層石塔, 683) 외 ·고려 - 부석사 무량수전(13C) 외 ·조선 - 무위사 극락전(無爲寺 極樂殿, 1476) 외
고구려에서는 벽화, 백제·신라에서는 목조 건축물을 본뜬 석조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존 유구(遺構)로는 고려 중기가 가장 엔타시스가 강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현저히 약해지지만 주심포계(柱心包系) 건축에서 사용이 계속되었습니다. | | 일본 | ·법륭사 금당·중문·회랑(法隆寺 金堂·中門·回廊/호류지 콘도·츄몬·카이로, 700년경) ·당초제사 금당(唐招提寺 金堂/토쇼다이지 콘도, 750년경)
법륭사에서 가장 강하고 당초제사에서는 얼마 안 되는 엔타시스에 그칩니다. 이후 단절. |
■스미노비(隅伸び: 귀솟음)
기둥을 세우는 방법에도 배려가 있습니다. 그 중 첫번째가 건물 모퉁이로 갈수록 기둥을 조금씩 높게 하는 스미노비입니다. 지붕의 선이 착각에 의해 처져 보이는 것에 대항하고 처마에 보다 더 아름다운 곡선을 주어서 경쾌한 외관을 만들기 위한 기법입니다. 또한 모퉁이의 기둥은 보다 큰 하중을 담당하기 때문에 긴 세월이 지나면 중앙의 기둥보다 침하하므로 이에 저항하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귀솟음이라고 불립니다. 사진에서 기둥의 머리를 연결하는 창방(昌枋)이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알겠습니까.
| 중국 |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용례는 정보가 부족해서 제시할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 | 한국 | ·백제 - 미륵사 석탑(600년경) 외 ·신라 - (미확인) ·고려 - 부석사 무량수전(13C) 외 ·조선 - 무위사 극락전(1476) 외
백제 석탑보다 후대(後代)가 되는 신라 석탑에서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목조 건축의 모방에서 시작된 석탑이 독자적인 형식을 발전시켜 가는데 있어서 세세한 목조 건축의 기법이 생략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존하는 고려·조선시대의 주심포계·다포계(多包系) 건축의 대부분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 | 일본 | ·당초제사 금당(750년경) ·대보은사 석가당(大報恩寺 釋迦堂/다이호온지 샤카도, 1274년)
16세기까지의 건축에서는 일반적. 근세에 단절. |
■우치코로비(内転び: 안쏠림)
기둥을 건물 안쪽으로 기울여 세우는 우치코로비. 약간 사다리꼴인 형상을 건물의 윤곽에 줘서 착각에 대항함과 동시에 안정감이 있는 외관을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한국에서는 안쏠림이라고 불립니다. 경사는 1도에서 2도이므로 실제로 보면 거의 판별할 수 없습니다만 주의 깊게 보면 모퉁이의 기둥이 중앙의 기둥 3개와는 약간 다른 각도로 눈에 비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중국 | ·원(元) - 원통보사 대전(圓通寶寺 大殿, 1320) | | 한국 | ·고구려 - 쌍영총 석주(雙楹塚 石柱, 5C 후반) ·백제 - 미륵사 석탑(600년경) 외 ·신라 - 분황사 석탑(芬皇寺 石塔, 634) 외 ·고려 - 부석사 무량수전(13C) 외 ·조선 - 불국사 대웅전(佛國寺 大雄殿, 1730) 외
초석(礎石)의 형상에서 안쏠림의 유무는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존하는 고려 이후의 건축에서도 주심포계·다포계를 불문하고 빈번히 사용됩니다. | | 일본 | ·동대사 삼월당(東大寺 三月堂/도다이지 산가츠도, 730년경)
종루(鐘樓)와 같은 소규모 건축에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
■실감개형 평면(안허리곡)
뿐만 아니라 건물의 평면도 보통은 장방형(長方形)으로 만드는데 한국에서는 실감개(spool)형으로 변형시켜서 양끝으로 갈수록 기둥을 건물 바깥쪽에 두고 아울러 공포(栱包)의 팔도 모퉁이로 갈수록 약간 길게 합니다. 건물의 정면에 섰을 때 양끝이 후방으로 들어가 보이는 착각을 교정하여 건물의 외관에 안정감을 주기 위한 기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기법으로, 한국에서는 안허리곡이라고 불립니다.
| 중국 | (미확인) | | 한국 | ·고구려 - 안학궁 남문(安鶴宮 南門, 6C 후반) ·백제 - (미확인) ·신라 - (미확인) ·발해 - 상경용천부 사원 유구(上京龍泉府 寺院 遺構, 9C) ·고려 - 강릉 객사문(江陵 客舍門, 14C) 외 ·조선 - 개성 남대문(開城 南大門, 1394) 경복궁(景福宮, 19C) 외 | | 일본 | (미확인) |
■마루의 휘어 올림
그리고 궁극은 지붕 꼭대기의 선입니다. 한국에서는 마루도리(종도리(宗道理))의 양끝에 사진과 같은 삼각형의 부재를 놓고 마루도리의 양끝을 높게 함으로써 서까래의 구배(勾配)를 높여 지붕 꼭대기의 선을 휘어 올립니다. 이것은 중국 건축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기법입니다. 일본에서는 평등원 봉황당(平等院 鳳凰堂/뵤도인 호오도) 등 고대의 건축에서 일부 볼 수 있습니다.

 건물 전체의, 기하학적인 형상의 아름다움, 윤곽선의 아름다움, 안정감. 이러한 것에 한국인은 철저히 구애되어 상기와 같은 곡선 기법을 건물에 아로새겨서 형태를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러한 기법이 애초에 쓰이질 않았는지, 쓰였더라도 시대가 내려옴과 동시에 급속히 퇴화하여 근세에 이르러서는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왜일까요. 한국인이 민감했던 선의 착시나 윤곽의 안정감에 대해 일본인이 냉담했다면, 그러면 일본인의 주의는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걸까요. 9세기에 대륙과의 교섭을 중단한 후, 대륙 건축을 일본화함으로써 태어난 '와요'(和樣; 일본풍)라는 건축 양식을 보면 일본인의 건물에 대한 시선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본 건축의 미(美)는 세부에 깃들여져 있습니다.
■서까래
 한국 - 금산사 미륵전(金山寺 彌勒殿) 한국 건축은 전체의 형상에 집착하는 한편으로, 가까이에서 세부를 살펴보면 목재의 굵기나 방향이 가지런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반대로 일본인은 이러한 요소의 불일치와 투박함을 극도로 싫어하고, 정연하고 섬세한 요소를 추구합니다. 그 때문에 부재는 가늘어지고 또 크기와 형태는 정밀하게 일치하며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처마 끝을 정리하는 처리는 일본 건축에서도 가장 어려운 공정으로, 다이쿠큐(大工泣/대공읍)라고 합니다.
 일본 - 제호사 오중탑(醍醐寺 五重塔/다이고지 고쥬노토)
■공포
이러한 일본인의 세부에의 구애됨은 공포에서도 철저히 관철되고 있습니다.
 한국 - 금산사 미륵전
 한국 -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한국 건축의 공포는 수평재(水平材)인 팔의 길이가 배치 장소에 따라 각각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평재끼리를 접속시키는 소로(小櫨)도 그에 따라 놓여져 있습니다. 역시 일본인으로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팔의 길이는 일정하게 가지런해야 하고 소로도 종횡으로 정연하게 놓이는 것을 추구합니다.
 일본 - 제호사 오중탑 세부의 질서에 대한 일본인의 집념을 확실히 느끼게 하는 것은 12세기 말에 쵸겐(重源)이라는 인물이 중국에서 가지고 돌아온 대불양식(大佛樣/다이부츠요)이라는 건축 양식의 2개의 유구를 볼 때입니다. 쵸겐은 동대사 대불전(東大寺 大佛殿/도다이지 다이부츠덴) - 2대째. 현존하지 않음 - 을 재건하는 한편, 같은 양식으로 1194년에 정토사 정토당(淨土寺 淨土堂/죠도지 죠도도), 1199년에 동대사 남대문(東大寺 南大門/도다이지 난다이몬)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과 5년 사이에도 일본화의 형적을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정토사 정토당 대불양식은 구조상의 합리성을 철저히 추구한 양식이었습니다. 정토사 정토당의 공포는 팔의 길이와 소로의 배치가 모두 필요에 응하여 결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장(意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적어도 당시의 일본인은 이런 분방한 외관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동대사 남대문 5년 후의 동대사 남대문에서는 이미 대불양식은 일본인 취향으로 변형되어, 소로가 종횡으로 추가되어 정연하게 놓여져 있습니다. 구조상으로는 필요가 없어도 아무튼 정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덧붙여서 대불양식은 결국 일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았고, 이 이후 두 번 다시 쓰이지 않았습니다.)
 건축 세부의 섬세하고 정밀한 가공. 정연하고 가지런한 배치.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엄밀한 질서. 이런 것에서 일본인은 미(美)를 찾아내어 그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아름다운 건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 - 불국사 대웅전 귀솟음과 안쏠림에 의해 휘어진 창방, 장방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벽면. 과연 한국 건축에서 쓰이는 착각 보정의 곡선 기법도, 이런 세부로 쏠리는 시선 아래에서는 부분의 질서나 정합을 파괴하는 일그러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쓰이지 않게 된 것도 당연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구애받는 장소가 다릅니다. 시점의 위치가 다릅니다. 비교적 양국의 국민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p***** - 과연! 매우 공부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전체의 안정감을 추구하고, 일본은 세부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군요. 이건 현대의 제품에도 적용될 것 같네요.
→ c********* - 그런 단순화한 견해를 조금 주장해 보았습니다. ㅎ 정확하게는 한국에서도 조선시대 후기부터 세부 장식으로 기우는 건축이 주류가 되고, 일본에서도 지붕을 경쾌하게 하기 위한 처마가 휘어진 상태의 고안은 약해지면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같은 중국 건축 베이스이면서도 발전의 방향성이 미묘하게 다른 것은 확실한데, 그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아아, 한국 건축의 그 일그러짐은 의도된 것이었군요!
→ c********* - 아마도 의도한 결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ㅎ 공포나 서까래의 돌출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무서운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공이 어려운 소나무를 재료로 쓰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고, 그러한 코스트의 문제도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 q***** - 물건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경우, 마무리 상태를 보면서 만들면 최초의 청사진과는 미묘하게 다르거나 하는 것입니다. 한국 건축의 공법 과정에 어떤 비밀이 있을 듯 싶네요.
→ c********* - 아, 확실히. 호류사 금당의 기둥은 일단 세우고 벽토(壁土)를 바른 후에 벽토로 메워진 기둥을 깎아서 엔타시스의 선을 수정한 자취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위와 같은 착각 보정 기법은 항상 전체와의 조화를 보면서 미조정(微調整)하지 않으면 쉽게 파탄하는 것 같네요.
a****** - 이전에 TV에서 본 뇌내 정보인데, 목재의 선정에서부터 벌채, 건조, 운반까지 수십년이 걸리는 거 같던데, 조선에서는 이런 일이 행해지지 않았던 걸까?
→ c********* - 음, 별로 잘은 모르겠지만, 일본의 건물도 그 정도까지 시간을 들이지 않는 예를 알고 있습니다. 2대째 동대사 대불전은 목재를 베고 나서 건립까지 5년이 지나지 않을 겁니다.
→ a****** - 생나무를 쓰면 세운 후에 비뚤어질 것 같은데 어떨까 ㅎ
→ c********* - 대불전은 불탈 때까지 400년, 남대문은 800년을 버텼군요. 덜마른 바지를 입고서 말리는 걸까….
g**** - 귀솟음, 안쏠림이나 조선후기 건축이 세부장식이 치중한다는 것 등 대단히 자세히 알고 있군요. 공부를 참 많이 하시는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추천합니다.
→ c********* - g****씨 오랜만입니다.(^o^)/ 일본의 연구자가 쓴 한국 건축의 개설서를 최근에 샀으므로 한가한 때에 언제나 읽고 있습니다. ㅎ
→ g**** - 나는 전통건축을 좋아하지만 지식이 별로 없어 부럽습니다. 이전에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지요.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건축도 추려서 올리면 재밌겠군요.
→ c********* - 金奉烈의 한국건축 이야기입니까. 읽어볼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한국의 건물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청녕헌, 종묘 정전, 기림사 대웅전… 으음, 뭔가 굉장히 진부한 라인업이네요. ㅎ 더 여러가지 건물을 볼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q***** - 뭐 지금의 건축은 조감에서의 야경의 미(美)를 추구하기 쉽상이지만, 사람의 시선에서 본 거리의 미나 건축물의 미는 현대 일본에서는 사라지고 있군요.
→ c********* - 전통 건축에서는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의 밸런스를 위해서 중층 건물의 지붕 각도를 바꾸거나 인접한 건물의 지붕과 조화를 이루도록 휘어진 상태를 세공하거나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조정이 항상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역시 옛 사람쪽이 미관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민감했던 것처럼 생각됩니다. 뭐 현대는 코스트의 문제가 훨씬 절실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요.
t******* - 재밌다. ㅎ 일본과는 다른 부분이지요. ㅎ 목재 같은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ㅎ 도자기에 대해서도 같은 걸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ㅎ 추천!
k***** - 가령 지진력이 도리가 놓인 방향으로 입력되었다고 하면 건물 내부 방향으로 누르는 힘이 분력(分力)으로 들어가는데 이 힘은 반복해서 측면의 들보에 츄잉껌을 씹는 것처럼 가해진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굴곡을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으로도 여겨진다.
→ c********* - 불국사 대웅전의 사진을 보면 기둥 사이의 창방은 다포의 하중으로 휘어져 있네요. 수평력의 결과로서 안쏠림이 되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초석을 놓는 단계에서부터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기법 자체는 세월이 지남에 따른 휘어짐과는 별개로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s****** - 좋은 글이다. 한국의 건축을 견학하는데 매우 참고가 된다고 생각한다. 건축에 한정되는게 아니라 문화에 있어서 항상 그렇지만 민족·기후·풍토 등에서 특징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정관념으로 다른 문화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른 민족·국가의 문화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 - 과연. 한국의 건축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것이었군요. 납득. 추천.
→ c********* - 나도 불국사의 대웅전을 처음 봤을 때 기울어진 기둥과 휘어진 창방에 매우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흥미를 가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ㅎ
s******** - 학식이 있으시군요. 건축도인가요?
→ c********* - 취미입니다 ^-^)/
m******* -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한국 건축의 솟구친 지붕은 귀솟음이라는 공법이었군요. 공부가 되었습니다.
→ c********* - 처마 끝을 올릴 뿐이라면 추녀와 부연(浮檐)의 각도를 얕게 취하면 가능합니다. 근세의 일본 건축은 그렇게 처마 끝만을 뒤로 젖힌 나기나타조리(長刀反り)를 쓰고 있습니다. 귀솟음은 처마 전체를 곡선으로 하는 소조리(総反り)를 위한 기법으로 한국 건축이나 중세까지의 일본 건축은 이쪽을 씁니다.
m****** - 꽤 좋은 스레드인데, 왜 한국측에는 이러한 스레드가 없는 것인가. 한국측으로부터 이러한 스레드가 많이 나오면 일본측도 기뻐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측 Fighting!
m********** - 허허.. 왠지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건축물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는 것이 왠지 부끄럽네요.. 근사한 취미인 것 같습니다. ^^
r**** - 대불양식.. 내가 아는 바, 한국에 동대사 만한 대불은 없다.
→ c********* - 대불양식이라는 것은 본문에 쓴 대로 12세기의 일본에서 사용된 건축 디자인과 구조의 스타일로, 그 스타일의 건물은 정토사 정토당과 동대사 남대문 2개만 남아 있습니다. 덧붙여서 이 양식은 남송에서 한국으로도 전해지고 있는데, 수덕사 대웅전이라든가에 같은 기법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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