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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사에 대한 의문 2008-09-21 07:14:33
金歷佛
※ 金歷佛 註 - 이 글은 2006년 12월에 일본인 c*********가 한일번역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金歷佛은 이 글의 논지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d******과 그 외 거시기한 한국인이

"고대 일본에 갑자기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원 건축이 등장한 것은 기술의 단절이다"
"따라서 도래인 기술자가 이주한 것이군요~"
"따라서 고대 한국의 속국이었죠(?) 헐헐헐"

이라며 좋아하는 광경은 이 게시판의 풍물시(風物詩) 중 하나이다.

확실히 '공포'나 '판축', '초석'을 비롯한 중국 기원의 건축 기법이나 약속된 형태가 어느 시점에 일본에 들어온 것은 분명한데, 그것은 불교와 함께 사원 건축으로서 최초로 전해졌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그럼

"기술자가 대륙이나 반도에서 일본으로 간 것이군요"
"역시 한국의 속국이었죠(?) 헐헐헐~"

이라는 다이나믹한 이론의 전개에 들어가기에 앞서, 실제로 일본의 최초기 사원 건축을 관찰해 보면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목조 건축인 법륭사(法隆寺/호류지)의 금당(金堂/콘도). 실루엣, 구름형(雲形) 공포의 성형, 내부의 엔타시스의 곡선 등, 외관에서 세부에 이르기까지 조금의 빈틈도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확실히 날카로운 미적 감각을 지닌 인간이 만든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구조에 눈을 돌려보면 이 금당이 비정상적인 건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말로 기술자가 만들었는가? 라고 의심하고 싶어지는 설계가 채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들보(일본명 하리(梁))

놀랍게도 법륭사 금당의 내진(內陣)에는 들보가 없는 것이다. 중국의 축조구법(軸組構法)의 기본은 "기둥을 창방(벽면방향)과 들보(오행방향)라는 2종의 수평 부재로 연결하여 고정하면 비로소 안정된 구조를 얻을 수 있다"는 도그마로, 예를 들어 이 경우라면 외진주(바깥쪽의 기둥. 그림의 평주)와 내진주(안쪽의 기둥. 그림의 고주)를 연결하는 치카라히지키(力肘木)는 내진주 위에서 절단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늘여서 내진주끼리의 연결에 쓰이던지, 아니면 다시 내진주 위에 들보를 싣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법륭사 금당은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여, 들보를 쓰지 않고 창방만으로 고주를 연결한다는 불안정한 구조를 택하고 있다.

●하앙(일본명 오다루키(尾垂木))

법륭사 금당의 처마는 하앙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데, 그 하앙을 평주와 고주 위에 실린 치카라히지키의 끄트머리가 지탱한다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 하앙과 치카라히지키의 끄트머리는 단지 요철(凹凸)에 의해 접합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하앙의 하중을 지탱하기엔 완전히 부족하다. 사실 해체수리 때에는 요철이 끊긴 것이 많았다. 본래 하앙이든 치카라히지키든, 바깥쪽 끄트머리로 하중을 받는 이상 안쪽의 끄트머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반대쪽의 하앙 혹은 치카라히지키와 연결하여 하중을 상쇄하든가 상층의 하중으로 눌러주지 않으면 미끄러져서 떨어져버리는데, 금당에는 이러한 배려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하앙에는 후대에 지주(支柱)가 추가되게 되었다.

●치카라히지키(力肘木)

마찬가지의 것을 하앙을 지탱하는 치카라히지키의 처리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바깥쪽 끄트머리가 하앙의 하중을 받는 이상 안쪽의 끄트머리도 위로부터 눌러주는 구조를 취하면 치카라히지키는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안쪽의 끄트머리는 내진주에 꽂아서 상층의 하중을 받는 구조를 취한다. 그런데 법륭사 금당의 치카라히지키는 안쪽 끄트머리를 내진주 위의 공포에 놓을 뿐으로, 눌러주는 역할은 평주 위의 동자기둥이 담당하고 있다. 대략 불합리한 설계이다.

●천정(天井)

물론 내진주와 평주의 높이가 같기 때문에 평주 위에 놓은 치카라히지키를 내진주에 꽂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애초에 높이를 같게 할 이유는 있는 것일까. 내진칸의 천정과 외진칸의 천정의 높이를 같게 하려는 거라면 몰라도, 금당에서는 내진칸의 천정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도 들보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고주 위에 놓은 동자기둥에 못으로 목재를 덧붙이고 거기에 접속시킨 사재(斜材)와 종횡 2개의 천정도리(天井桁/텐조케타)로 지탱한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천정은 거의 구조체로부터 유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무리를 하지 않아도 내진주를 늘이고 들보를 놓으면 끝나는 이야기다.

요컨대 중국의 구법(構法)에 따라서 금당의 공간 구성을 만족시키자면 이런 식이어야 한다.




다만 중국에는 법륭사에 필적하는 오래된 목조 건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후대의 예로부터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이 정도 규모의 건축이면 보통은 윗 그림과 같이 내진주를 평주보다 길게 하여 평주 위의 공포에 끼워 넣은 치카라히지키를 내진주에 꽂고, 그 위로 뻗은 내진주 위에 따로 공포를 놓아서 대들보를 받고 그에 따라 무리없이 내진칸의 천정을 외진칸의 그것보다 일단(一段) 높여서 짓는 방법을 택한다. 일본의 건축도 법륭사 이후의 건축은 대부분 그 예를 따른다. 축조구법과 그것을 구성하는 각 부재의 구조상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 창방(일본명 카시라누키(頭貫))

하는 김에, 기둥을 수평 방향으로 연결하는 부재인 창방에 대해서도 금당의 그것은 충분히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재목의 길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창방은 기둥의 내부에서 접속되는데, 본래라면 잘려서 이어진 부분은 대칭으로 배분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금당에서는 외진의 남쪽에서 몹시 세세하게 잘려서 이어지고 있다. 안정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런 구조를 택할 필연성은 눈에 띄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잘려서 이어진 부분은 요철을 통해 제대로 부재를 짜맞추지 않으면 구조상 의미를 가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다수는 기둥을 관통하지 않고 창방의 끄트머리를 따로따로 기둥에 내려 끼우고 있다. 목재를 짜맞춰서 안정시킨다는 관념 같은 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요컨데 법륭사 금당은 외관이나 공간구성에 관해서는 사원으로서의 태(態)를 이루어 고도로 세련되기까지도 하지만, 내진쪽 공포의 처리·천정의 구법·창방의 접합, 그리고 들보가 전무한 구조법 등과 관련해서는 그 직후 시대의 건축물에 비해 전혀 터무니 없고,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거쳐 대성되고 있던 당시 중국의 건축 기법에 대해서 충분히 익숙한 사람이 설계한 건축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다마무시노즈시(玉蟲廚子/옥충주자)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마무시노즈시와 같은 어떤 건축적 모형을 표본으로 하여 대륙 건축의 구조상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인간이 만들었을 가능성이다. 법륭사 금당 내부의 공포는 극히 단순해서, 그 방면의 전문 기술자가 아니어도 아마추어인 유학생이 기억하여 가지고 온 지식이나 간단한 그림으로부터도 실현될 수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라고 쇼와(昭和)의 법륭사 해체 수리에 참가한 타케시마 타쿠이치(竹島卓一)라는 연구자는 말한다.) 일본의 목수가 서양 건축을 눈동냥으로 만든 '의양풍건축'(擬洋風建築)이 나타난 메이지(明治)기와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아래는 그 예인 류코쿠대학(龍谷大學) 오미야학사(大宮學舍) 본관. 1879년)




그럼 어떻게 이런 건축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는가 하면, 극히 사치스러운 재료를 썼기 때문에라는 것 같다. 원래 대륙이나 반도에 비해 일본은 목재 자원을 타고 났지만, 특히 법륭사에 사용된 부재는 대륙은 물론 일본에서도 후대의 같은 규모의 건물에서 예를 볼 수 없을만큼 굵다. 길고 굵어서 강한 재료를 넉넉하게 써서 지으면, 그리고 보수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다소 구조상 불합리해도 1300년간 유지되어버리는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400년전의 대개수 때라든가 쇼와의 해체수리 때라든가에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던 것 같지만.)

어째서 이상할 정도로 굵은 기둥이 쓰인 것일까? 굴립주(掘立柱)에 의한 종래의 구법에 익숙한 일본인이, 기둥을 초석 위에 놓을 뿐인 대륙의 구법에서 불안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혹은 실제로 초석주(礎石柱)의 수법으로 세운 건축이 지진이나 태풍에 의해 도괴한 경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지진이나 태풍에 의해 가옥이 도괴하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러한 일이 터무니 없이 굵은 기둥의 사용을 생각해내도록 한 것은 비교적 떠올리기 쉽다. 후대에는 이 대륙의 건축기법에 대한 불안이 이윽고 초석의 중심에 철(凸)을 만들어서 기둥의 미끄러짐을 막는 것을 궁리해내도록 하고, 목재를 짜맞추는 방법에도 고안이 가해짐에 따라 일본 독자의 구법을 발전시켜 간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 한국"으로부터 정말로 기술자가 온 것일까? 뭐 "애당초 고대 한국의 건축이 엉터리였다" 라고 할 가능성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경우 오든 안 오든 대단한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참고문헌 「건축 기법에서 본 법륭사 금당의 제문제」(建築技法から見た法隆寺金堂の諸問題) 타케시마 타쿠이치(竹島卓一) 著


 n********* - 태평양전쟁 중에도 법륭사 재건·비재건 논쟁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일본인 모두가 전쟁에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건축사에는 전혀 흥미가 없지만 이 논쟁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c********* - 재건·비재건 논쟁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책이 나와 있을 정도로 치열합니다만, 보면은 온갖 어프로치로부터 주장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법륭사는 건축사의 영원의 테마군요.

 n******* - 죠몽(縄文) 양식의 거목 문화라고도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c********* - 죠몽시대 이래의 일본에서의 축적이라는 것은 확실히 있군요. 거목이 풍부한 고로, 대륙식의 공포나 축조구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대규모 건축을 만들 수 있었고, 실제로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야요이시대에 이미 인방이 쓰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혹시 법륭사에서 창방을 접합시키지 않는 것은 그 계보가 이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c********* - 일본에서 쓰여 온 구법에 익숙해져 있던 공장(工匠)들이, 이질적인 대륙에서의 건축 양식을 흉내내어 짓는 것에 있어서의 당황함 같은 것이 금당에는 내장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이미 사원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일본에서 지어지고 나서 100년을 거치고 있으므로 그 사이의 경험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아직 7세기말의 법륭사 단계에서는 대륙식 건축의 본질은 이해되지 못하고 있었거나,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8세기에 들어서면 구조는 축조의 작법에 준거하여 현격히 세련되어집니다. 불교가 간진(鑑眞)에 의해 비로소 제대로 전해진 것과 같은 일이 사원 건축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y******** - 비프스튜를 재현하려고 하다가 니쿠쟈가(肉じゃが)를 개발해 버린 것처럼?

 c********* - 마루야마 오쿄(円山応挙)가 고양이를 모델로 하여 본 적이 없는 호랑이를 그린 것처럼…. 비프스튜 쪽이 낫네요.ㅎ 굳이 말하자면, 아마추어가 만들어본 적이 없는 비프스튜를 레시피도 없이 만들려고 최고급 재료를 쓰면, 요리사가 만드는 싸구려 비프스튜보다 훨씬 더 맛있는 니쿠쟈가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느낌이랄까요.

 y******** - 거기에는 역시 그림에 대한 소질이라든지 요리심(料理心)과 솜씨가 필요하겠죠. 그다지 관계는 없습니다만, 나의 어머니도 텔레비전에서 본 요리를 "마지막 부분 밖에 잘 못봤지만···"이라며 적당히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긋남이 없는 것은 반대로 자기 나름대로의 상식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까?

 c********* - 중국의 구법에서 보면 분명히 구조상의 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당이 결과적으로 '어긋'나지 않았던 것은 부재를 이상할 정도로 굵게 했던 것이 이유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만, 그 선택을 한 것은 지금까지의 사원 건축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긋남'을 만들어 버린 경험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c********** - 매우 재미 있었습니다. 추천. 그런데 400년전의 대수리에서 다시 짜맞춘다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메이지 수리에서의 당초제사(唐招提寺/토쇼다이지) 금당의 트러스 구조처럼.

 c********* - 게이쵸(慶長) 수리에서는 다른 당(堂)은 꽤 대담한 양식상의 변경이 가해지고 있습니다만, 서원(西院)의 금당에 관해서는 열화(劣化)한 부재의 교환과 지주(支柱)의 추가에 의한 보강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역시 근세의 수리답게 상세한 기록은 물론 열화하여 교환한 부재까지 보관되고 있고, 어디를 보수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양식의 변경을 실시하지 않았던 이유는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완성되어버린 금당의 외관을 무너뜨리는 것에 주저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둥의 엔타시스는 당내에 짜맞춘 후에 생기는 시각 효과를 생각하여 한 개 한 개 만들면서 곡률(曲率)을 미조정하거나 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외형'에 관해서는 극히 신경을 두루 쓴 건축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c********** - 그렇군요. 죠몽 건축으로부터 연속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연대적으로는 갭이 있으니. 미적 섬세함을 가지는 지금은 잃어버린 야요이 건축의 계보라든가 하는 것이 있었을지도...라며 망상을 부풀려 본다.♡

 t*********** - 저자인 타케시마 모(某)는 법륭사의 고(故) 니시오카(西岡) 도편수에게 너덜너덜하게 될 때까지 논파된 학자 선생이 아니었던가?

 c********* - 뭔가 법륜사(法輪寺/호린지)의 탑을 재건할 때에, 철골 사용 유무로 니시오카 도편수와의 사이에 대논쟁이 있었다던가.

 t*********** - 법륭사 재건에 사용된 사이프러스는 이미 일본에는 없어서 대만에서 들여온 것이었던 것 같다. 숲은 소중히 하자. 미래의 일본을 위해서.

 c********* - 약사사(藥師寺/야쿠시지) 금당이 타이완 사이프러스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법륭사도 그렇습니까. 쇼와 대수리는 1934년부터 52년까지입니다만, 식민지 시대에 들여왔던 건가.

 t*********** - 실수했습니다. 약사사 금당의 수복에 사용한 것이 타이완 사이프러스군요. 법륭사에는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t*********** - 사이프러스 이상으로 귀중한 것은 일본 고래(古來)의 못인 화정(和釘)인 것 같네요.

 c********* - 특히 법륭사에는 창방의 구조상의 의미가 낮기 때문에 나게시(長押)를 고정시키는 못의 강도는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금당의 천정을 지탱하고 있는 것도 못으로 고정당한 지륜(支輪)이구요. 확실히 약사사의 강당에 화정의 변천이 전시되어 있군요.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서 자꾸자꾸 가늘고 연약하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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